평등과 공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1)평등(平等):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이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
2)공정(公正): 공평하고 올바름.
네이버에서 쉽게 사전적 의미를 찾아 적어 놓고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사전적 의미도 중요하다. 하지만 낱말이 보여주는 글자그대로의 형식적 의미로는 잘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두 낱말이 비슷하고 같아 보이니 말이다.
실질적 의미는 객관적 관점보다는 좀 각기 다른 주관적인 관점으로 들여다 보아야 이해가 빠르고 해석이 되는 듯해 한번 논란거리를 만들고 싶어졌다. 좀 더 깊게 내안으로 파고들어 인간을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해 우리사회 많은 갈등들이 봉합되고 화합하길 희망하듯이 나 또한 내안에서의 평등과 공정의 차이에 대한 이 두 낱말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찾아 분한 억울함을 잠재우고 싶다. 학창시절 배웠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산술적(절대적)인 평등과 비례적인 평등 중 그 하나가 무너지면 평등하지 않다고 배웠다.
첫째, 평등?
우리 어머니는 평생 농사를 짓고 고향을 지키며 사셨다. 70세이후에 어느날 골다공증으로 척추가 무너져 서울대병원이나 삼성의료원등의 대형병원에 가려했더니 한 자녀가 휴가를 내야 했고 몇 달에 한번 그 병원에 갈까말까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서울강남에 살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 때나 혼자서도 편리한 교통수단을 선택하여 우수한 병원에 갈수 있다. 의료서비스의 접근성, 계속성, 편리성을 고려해서 서울강남에 살면 된다. 우리어머니도 평생지켜온 고향땅을 팔고 자녀들이 십시일반으로 보태어 서울강남으로 이사하면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우리어머니가 바보라서 그렇다. 그 자녀들도 아마 바보일게다. 일년에 기껏해야 두서너번 간신히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 다니며 국민건강보험료는 언제나 수시로 우수한 의료서비스을 받을수 있는 곳에 사는 노인과 똑같이 납부하고 있다. 의료를 자유시장경쟁체재에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여기있다. 도나베디언이 말한 보건경제학적 특성 때문에 민간의료에 다 맞기지 못하고 공공의료부문을 확충(?)해 나아가고도 있다. 그러나 이걸로 비례적 평등을 대신하여 설명되어질 수는 없다.
두 번째, 공정?
나는 10여년전 고향에 내려와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생산부터 제조,유통,체험까지 도맡아하는 소위 6차융복합산업이라는 것을 마을사람들과 하고 있다. 먼저 주관적 사견을 말하자면, 이는 입에서 단내가 나고 쓸게즙이 올라올 정도에 불자의 고행길일 게다. 도농간의 일촌일사맺기운동 같은 반짝 군행정은 어린시절 짝사랑놀이처럼 6개월이면 끝이 나고 만다. 누구도 책임져주지도 이어가는 이도 없다. 또한, 전문가들도 하지 못할 6차융복합산업은 농민들에게 혼자 반도체 칩을 만들어 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시골엔 정말 일할(?) 사람이 없다.
행여 품목별 지원정책이나 보조금정책들이 공정이라는 낱말로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지만 소위 민주주의와 능력주의라는 것을 내세워 순위와 줄세우기를 하며, 형식적 공정이라는 낱말로 꽁꽁포장해 누구도 반박을 못하게 만드는 우리사회의 골 깊은 정서가 자리한지 꽤 오래됐다.
변방의 오지에 사는 국민이 아닌 백성(계급사회의 노예)들은 늘 그 능력평가에서 탈락되어 모자란 바보취급을 받으며 죄인으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그 형식적 공정으로 포장한 능력 우선순위의 그늘아래서 오늘도 실질적 공정의 지역균형배정정책을 기다리며 바보로 살아가고 있다.
진짜 우리가 아는 바보가 이 바보 맞아???
2022. 1. 3. 저녁 9시 45분에....
평등과 공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1)평등(平等):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이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
2)공정(公正): 공평하고 올바름.
네이버에서 쉽게 사전적 의미를 찾아 적어 놓고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사전적 의미도 중요하다. 하지만 낱말이 보여주는 글자그대로의 형식적 의미로는 잘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두 낱말이 비슷하고 같아 보이니 말이다.
실질적 의미는 객관적 관점보다는 좀 각기 다른 주관적인 관점으로 들여다 보아야 이해가 빠르고 해석이 되는 듯해 한번 논란거리를 만들고 싶어졌다. 좀 더 깊게 내안으로 파고들어 인간을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해 우리사회 많은 갈등들이 봉합되고 화합하길 희망하듯이 나 또한 내안에서의 평등과 공정의 차이에 대한 이 두 낱말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찾아 분한 억울함을 잠재우고 싶다. 학창시절 배웠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산술적(절대적)인 평등과 비례적인 평등 중 그 하나가 무너지면 평등하지 않다고 배웠다.
첫째, 평등?
우리 어머니는 평생 농사를 짓고 고향을 지키며 사셨다. 70세이후에 어느날 골다공증으로 척추가 무너져 서울대병원이나 삼성의료원등의 대형병원에 가려했더니 한 자녀가 휴가를 내야 했고 몇 달에 한번 그 병원에 갈까말까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서울강남에 살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 때나 혼자서도 편리한 교통수단을 선택하여 우수한 병원에 갈수 있다. 의료서비스의 접근성, 계속성, 편리성을 고려해서 서울강남에 살면 된다. 우리어머니도 평생지켜온 고향땅을 팔고 자녀들이 십시일반으로 보태어 서울강남으로 이사하면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우리어머니가 바보라서 그렇다. 그 자녀들도 아마 바보일게다. 일년에 기껏해야 두서너번 간신히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 다니며 국민건강보험료는 언제나 수시로 우수한 의료서비스을 받을수 있는 곳에 사는 노인과 똑같이 납부하고 있다. 의료를 자유시장경쟁체재에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여기있다. 도나베디언이 말한 보건경제학적 특성 때문에 민간의료에 다 맞기지 못하고 공공의료부문을 확충(?)해 나아가고도 있다. 그러나 이걸로 비례적 평등을 대신하여 설명되어질 수는 없다.
두 번째, 공정?
나는 10여년전 고향에 내려와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생산부터 제조,유통,체험까지 도맡아하는 소위 6차융복합산업이라는 것을 마을사람들과 하고 있다. 먼저 주관적 사견을 말하자면, 이는 입에서 단내가 나고 쓸게즙이 올라올 정도에 불자의 고행길일 게다. 도농간의 일촌일사맺기운동 같은 반짝 군행정은 어린시절 짝사랑놀이처럼 6개월이면 끝이 나고 만다. 누구도 책임져주지도 이어가는 이도 없다. 또한, 전문가들도 하지 못할 6차융복합산업은 농민들에게 혼자 반도체 칩을 만들어 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시골엔 정말 일할(?) 사람이 없다.
행여 품목별 지원정책이나 보조금정책들이 공정이라는 낱말로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지만 소위 민주주의와 능력주의라는 것을 내세워 순위와 줄세우기를 하며, 형식적 공정이라는 낱말로 꽁꽁포장해 누구도 반박을 못하게 만드는 우리사회의 골 깊은 정서가 자리한지 꽤 오래됐다.
변방의 오지에 사는 국민이 아닌 백성(계급사회의 노예)들은 늘 그 능력평가에서 탈락되어 모자란 바보취급을 받으며 죄인으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그 형식적 공정으로 포장한 능력 우선순위의 그늘아래서 오늘도 실질적 공정의 지역균형배정정책을 기다리며 바보로 살아가고 있다.
진짜 우리가 아는 바보가 이 바보 맞아???
2022. 1. 3. 저녁 9시 45분에....